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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값 검사’ 명단 내놓지 않으면 수사 않겠다?

아름다운내일 2007. 11. 6. 22:37

‘떡값 검사’ 명단 내놓지 않으면 수사 않겠다?

 

[한겨레]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폭로 내용에 대한 6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고발과 관련해 “로비 대상 검사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배당하기 어렵다”는 검찰의 태도는 법과 상식을 뛰어넘는다.

고발장에는 그동안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이 모두 담겼다. 민변은
이건희 회장 등 피고발인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경가법)의 업무상 횡령과 배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증거인멸 교사, 뇌물공여, 배임증재, 증권거래법 위반 등 모두 9가지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비 대상 명단을 먼저 내놓으라며 검찰이 내세운 명분은 ‘수사의 공정성’이다. 삼성의 로비를 받은 검사가 이 사건을 맡아 수사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발장이 접수되면 바로 수사에 들어가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또 달라진 태도다.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은 “무한정 배당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로비 대상 검사) 명단을 공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수사가 어렵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달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
사제단이 삼성 비자금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검찰은 전혀 수사에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왔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의혹이 제기되면 고발이 없더라도 특수부 등에서 곧바로 인지 수사에 나섰던 전례들과는 크게 다른 태도였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차명계좌 번호 등 구체적인 수사 단서가 제시된 상황이었다.

민변이나 사제단은 애초 검찰 고발을 주저했다. 민변의
백승헌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검찰까지 로비 의혹을 사고 있기에 특별검사가 수사 주체가 되는 게 맞지만, 특검법의 발의와 제정, 임명 등에 시간이 걸린다”며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해 먼저 검찰에 고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떡값 검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역이용해 아예 배당조차 하지 않을 명분을 찾은 셈이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검찰의 이런 태도에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자체를 검찰이 부인했다”고 비판했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될 때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조건을 달아 배당을 하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검찰 간부 상당수가 삼성의 로비 대상이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검찰은 ‘일단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 과정에서 떡값 검사가 나오면 수사에서 배제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로비 대상에 수사지휘선상에 있는 검찰 최고위층도 여럿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나 검찰 논리대로라면 “배당이 어렵다”는 결정을 내린 검찰 지휘부 역시 ‘로비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 된다. 또 ‘떡값 검사’는 고발장에 담긴 삼성의 뇌물공여 혐의를 수사하며 밝혀내야 할 사안이지 고발인이 굳이 공개할 대상은 아니라는 점 에서 검찰의 변명은 궁색하다.

검찰 스스로 사실상 수사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민변은 “검찰의 책임회피성 태도는 떡값 검사에 대한 의혹을 더욱 굳히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떡값 검사의 명단 문제를 빌미로 다시 삼성에 대한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을 천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남일 고제규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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