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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공정은 서막에 불과하다. - 항공대 우실하 교수 인터뷰

아름다운내일 2007. 9. 29. 10:09

중국의 동북공정은 서막에 불과하다. - 항공대 우실하 교수 인터뷰

 

출처 : 김인수PD,심규완 기자 ? 정치웹진 PPAN.co.kr  2006/10/19

 

계속되는 ‘뒤통수 맞기’

최근 다시 ‘백두산공정’ 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역사왜곡이 화제이다.

중국은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이 중국의 영토라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대대적인 백두산 개발에 나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데, 우리는 한눈에 이를 동북공정과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동북공정,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었다.

대략,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것이라고 널리 알려진 동북공정, 그러나 실상, 그것은 이에 머물지 않는 중국의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되는 ‘거대한 장기계획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9월 13일 항공대 교양학부의 우실하 교수는 “중국의 역사 관련 공정의 최종판-요하문명론”이라는 제목의 국회발표자료에서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우 교수는 서두에 중국공산당에서 간행하는 ‘흑하일보’등에 “동북공정이 정부가 주도하는 장기계획이다.”라는 실증적인 증거가 밝혀졌다고 주장하면서 지방정부나 학술의견이라는 중국정부의 공식입장을 논박하였다.

우 교수는 이어서 그것은 동북3성(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일대에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를 중국민족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장기 전략이며, 중국이 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 국내에서 고구려 연구재단으로 대응한 것은 오판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동북공정, 그 변신의 끝은 무엇인가?

우 교수에 따르면 동북공정은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으며, 21세기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국가전략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의 종착점은 요하(遼河)일대를 기존의 4대문명보다 훨씬 앞서는 1만년 역사의 새로운 문명권으로 부각시킨다는 ‘요하 문명론’이라고 역설했다.

그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한반도를 염두에 둔 역사관련 작업들이 천천히 진행되어왔다. 치우(蚩尤), 웅녀(熊女)등 한국역사의 신화적 인물들을 자기네 역사인물들로 변조시키면서 “현재 중국 땅인 만주지역의 토착세력으로 그들은 당연히 중국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에 동북공정을 고구려 공정쯤으로 보아온 기존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기존의 시각으로서는 다른 중국의 국가 전략과의 상관성을 찾기 어려우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것이 나올 때 마다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우 교수는 “이를 대신해 우리는 동북공정을 포함한 다양한 역사 공정들과 대한반도 전략들을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개혁, 개방이후 21세기를 향한 중국의 국가전략으로서 56개 민족 간 갈등 없이 안정적인 ‘대중화주의건설’과 세계 최고의 요하 문명권을 바탕으로 21세기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큰 틀에서 바라볼 때만이 중국이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긴밀한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역사의 근원으로 여기던 황하문명은 ‘앙소문화’라고 불리는 요하문명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고증을 거쳐 밝혀진 유물에 따르면 만리장성 밖 만주지역에 위치한 요하문명은 기원전 3500년에서 5000년까지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나 대규모 적석총과 제단이 확인된 요하 일대의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발견은 중국으로서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요하 일대의 각 유적에서 중원문화권에서보다 한반도문화권에서 많이 보이는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었고, 이들이 내몽골,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 문화 계통이라는 점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중화주의 건설전략의 차원에서 한반도 문화와의 연계성을 사전에 차단하였다. 그리고 대중화주의의 청사진인 요하문명권의 밑그림을 그려가는 데 방해가 되는 동북지역의 논란거리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북공정을 수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실하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다.

동북공정,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 우선 첫째로 나는 중국은 중앙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외교부 성명과는 달리 실제로는 최고지도부의 지시와 비준 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논의한 바가 있다. 둘째로 우리는 동북공정 이후에도 다른 공정과 연계되어 있는 국가 전략의 거대한 틀을 바라보아야 한다. 동북공정의 대응 때도 고구려 연구재단 등 그것을 고구려공정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동북공정은 그에 앞서 동북아시아 전체의 소수민족과 역사를 중국역사에 포함시키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이를 다른 공정과 연계한 큰 틀로서 바라보지 못하면 이에 대응하거나 미리 예방할 수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요하 문명은 우리만의 것이다.”의 결과는 여지없이 ‘문명 전쟁’뿐이다. 이러한 식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요하문명의 기원이 전파되면서 중원 문화나 한민족에 동시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중국은 현재 어디까지 진전해 있는가?

예전에는 중국 연변 내 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사양용(一事兩用)론이 나왔었다. 중국사도, 한국사도 될 수 있다는 원리인 그것은 현재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그 의미가 아닌 “고구려는 중국사인데 한민족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도 그 역사를 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보는 견해로 대체되었다.

원래 중국에서의 민족주의는 분열주의의 개념이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민족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강제 철거당했었다. 그러나 91년 만천성산림국가공원 안에 18미터나 되는 웅녀 상을 세웠다. 만주 토착세력으로서 단군신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웅녀의 존재를 중국 땅내이기 때문에 중국인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중엔 단군까지 중국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에게 닥칠 운명은 무엇인가?

동북공정은 원래 내년 2월까지가 시한이었으나 중국정부가 올해 9월에 미리 끝내게 하였다.
지금은 동북공정과 탐원공정의 결과를 연결시켜 요하문명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요하문명론의 핵심논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자국영토 내의 모든 역사의 기원은 모두 황제이고, 중화 문명의 시발점은 ‘요하’라고 보는 이 이론은 예전의 황하문명론을 대체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전까지는 여태껏 요하 유역인 북방은 중화 문명이라고 설명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지역을 계속 야만인의 땅으로 여겼다가는 중원 문화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위기를 맞게 될 것임에, 이를 억지로 황제족에 편입시킴으로써 중화 문명의 시발점으로 여기는 것이 요하문명론의 총체이다.

그렇게 되면서 이에 발현한 모든 역사는 중국사에 편입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만 이야기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역사전쟁에서 문명전쟁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동북 지역의 요하 문명권에서 일부는 남부의 중원으로, 일부는 예맥족으로 이어져 부여와 고구려를 형성하였다.

이는 한반도와 중국이 공통적인 시원문화를 가졌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부 중국 것이다”. 라고 주장하면 해결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측면에서 “요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문명의 발원지로 설정할 수 있는 풍부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있으며, 그것은 동북아 공동의 문화의 시발점으로 여겨야한다.”라는 방향설정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학계는 고구려연구재단의 한계성 때문에 동북아 연구재단으로 확대 재편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학자들과 관료들로만 구성되어있어 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은 21세기 대중화주의라는 전략으로 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고, 요하 문명론을 비롯한 다른 여러 사안들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역사학적 연구자들로만은 대응하기 힘들다. 정치학, 정치사상, 국제법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고르게 링크되어 논의되어야 한다.

즉, 크게 구상하는 대안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동북아역사재단의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는 국가전략의 큰 틀 안에서 종교사, 문화사, 정치사상등이 연합해야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학계의 모든 연구자들을 두루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단은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학계의 우수한 연구원들과 함께 이를 총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셋째로, 요하문명론의 문제점은 주도 세력이 모두 ‘황제족’이고 문명전쟁으로 갈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저지하고, 필요시에는 정상회담을 개최해서라도 요하를 동북아시아 공동의 문명 발원지로 자리매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요하 문명은 기원전 6500년 전의 최초의 집단 주거지등, 세계적인 문명의 진원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또한 그것을 공동의 문명진원지로 삼는다면 겉으로는 상생을 외치면서 깊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동북아를 넓게 아우르면서 새로운 21세기의 문명 공동체로 갈수 있다.


우실하 교수는 여러차례에 걸쳐 동북공정이 커다란 장기계획내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자칫 나무만을 보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이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요하문명론이라는 숲을 비유해 강조하였다.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 안에서 우리는 다가가기 쉬운 사안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쉽게 설명하고, 쉽게 와 닿는 것에만 쉽게 흥분하고 이내 잊혀지는 현실을 볼 때 우리는 좀 더 진지하고 구체적이며 내용 있는 분석을 수행하고 요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동북공정 문제만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점은 여실히 나타난다. 우실하 교수와의 대화는 중국의 장기적인 계획과 의도에는 관심 없이 각 사안들에만 미시적으로 대처하는 대응방식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반드시 장기적 대응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